딸 아이가 시무룩해서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유인즉 병아리를 누가 불에 태워 죽였다는 것이다. 그 시체를 보았다는 것이다.
딸 아이는 병아리를 죽인 누군가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하기 까지 했다.
나중에 큰 아이가 와서 물어보니, 6학년쯤되는 형이 병아리를 샀는데 집에 가져가니까 엄마가 못 키우게 해서 병아리를 들고 운동장으로 와서 친구들과 괴롭히고 놀다가 라이터로 태워죽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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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어릴 때 나도 병아리를 사서 키워보았다. 병아리는 온갖 정성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가고 속절없이 죽었다. 나는 병아리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병아리를 묻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우울하게 날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하고는 문방구에서 파는 병아리를 나는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귀여운 병아리를 키우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키우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린가슴에 죽음이라는 멍이 들었었다.
우리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갓난아이시절과 유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가축들을 함께 키웠다. 개와 오리와 닭,염소, 토끼...
그런데 도시로 이사오니까 강아지도 키울 수 없고, 고양이도 키울 수 없음을 알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우리집 아이들도 문방구 앞에 파는 병아리를 키우고 싶어했다. 난 아이들에게 말했다.
"저기 파는 병아리들은 금방 죽으니까 사면 안돼. "
그런 나의 말 속엔 아이들이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한 의지가 있었다. 사실 그 말 속엔 어린 시절 죽어가던 노란 병아리에 대한 아픔이 배여있다.
오늘 나는 병아리를 판 상인에 대해 일어나는 분노를 느꼈다. 얼마 못살고 죽을지 뻔히 알면서, 아니 이 좁은 도시에서 병아리를 키운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어린 동심을 이용해서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해먹으려하다니...
거기에 더불어 나dl 어린동심과 상반된 잔인한 동심을 보고 경악하고 있다.
부모가 못키우게 한다고 도로 들고 나온 병아리. 처치곤란해서 괴롭히다가 불에 태워 죽이다니...하기야 맨날 죽이는 게임을 하며 살인무기로 자라온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사랑이 제대로 꽃피울 수 있을까 ? 저런 아이들이 크면 제2의 유영철이 안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지.
누가 병아리를 파는지..그들에게 팔지마라고 한바탕 싸울 기세도 없으면서도 나는 문방구 앞을 둘러보았다. 저녁때가 되어서 그런가 아침에 팔았다는 병아리들은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와 함께 병아리가 죽어있다는 곳에 가보니까...정말 그렇게 죽어 오그라들어 있다. 나는 딸과 함께 병아리사체를 흙과 지푸라기로 덮어주었다.
딸은 계속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병아리를 죽인 오빠들 내가 용서하지 안을거야. 그 오빠들 내가 죽이고 싶어."
이제 초등학교 1년생인 딸이 단단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런데 딸 아이 마음 속에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장난감처럼 다루다버린 그 오빠들에 대한 증오가 또 다른 살기어린 말로 나오고 있다. 증오는 순환하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고 했던가.
나는 딸을 잘 타일렀다.
그 오빠들은 나쁘지만,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도 나쁘다고.
노란병아리가 비실비실 죽어갈때에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병아리를 보살피며 울며 기도했던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추억 안에 감추인 짙은 아픔이 오늘 올라와서 이제 어른이 되어 분노하는 딸을 다독거리는 내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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