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다리사색

나의 고통

00하늘다리 2005. 4. 25. 12:58

나는 어젯밤 무척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다.

요즘 내게 있어서 고통이란 무엇이냐하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고통이다.

 

'에니어그램'을 하게 되면서...

나 자신의 집착과 함정과 유혹들을 갈수록 명확히 보게 되었고,

내 행동의 패턴을 보게 되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또 한편으론 아직도 자유롭지 못함으로 인한 서글픔을.......

또 또 한편으론 자유로인해 선택해야할 부담과 책임감으로 무거웠다.

 

동시에 나는........

정기적인 고요한 시간을 즐기게 되면서....

거짓자아의 기승을 보게 된다.

(거짓자아 또한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왜곡된 동기들, 성격과 공통분모가 많다.거의 그렇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경건함 속에서도...

자칫 현존에서 벗어나는 순간 엄연히 도사리고 있는 거짓자아의 획책.

 

난 다시는 이런 획책에 넘어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말하는 그 순간에도......

이미 내게 거짓자아의 은밀한 동기가 이 말 속에 숨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

Centering Prayer에서 말하는 현존의 중요성이 여실히 내 삶에서 증명된다.

하나님의 활동과 현존하심에 내 자신이 온전히 현존하지 않는 그 모든 시간들은......

오염되어 있다. 거짓자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있다.

그것이 '에니어그램'과 '센터링기도' 수련에 힘입어 진단이 점점 세밀하고 명확해지는 것이다.

 

난 용기를 잃었다.

내게서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황홀경도, 작은 깨달음들의 보석같은 체험들도, 거룩한 마음도.......

내가 체험했다고 느끼고 내 손에 쥐려는 순간 그것은 연기처럼 손안을 빠져나간다.

내 손에 남는 것은 허무와 절망......

 

이 엄연한 사실을 내가 도대체 얼마나 더 반복해서 깨달아야

내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게서 참자아가 샘솟게 될까 ?

 

어쩌면........난 점점 더 침묵에 머물게 될지 모르겠다.

내 내면을 묻고, 밝히고, 성찰하고, 정리하는 이 작업조차도 안하게 될지도.....

왜냐하면....

나의 모든 시도들이 부당하고, 오염되었음을 난 점점 ,반복하며,깊게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부분에서 기독교는 뉴에이지적인 것들보다 고통스럽다.

뉴에이지적인 것들은 내게 환희와 기쁨과 행복과 희망을 준다. 힘을 준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게 고통을 직면하게 한다.

나를 깊은 어둔밤과 메마름으로 이끌고 간다.

 

다행히, 나는 뉴에이지적인 것들을 맛보고, 이미 그 허상과 오류를 경험한 터라....

내 갈길을 여전히 꾸준히 가겠지만.

그것이 고통과 메마름의 연속일지라도.....

 

내게는 잘한다는것, 뛰어나다는 것, 탁월하다는 것,.......

이 모든.....세속적 칭찬과 판단이 걸림돌이다.

그래서 센터링기도  강의 후에 박수치는 것을 마다했던 엄무광 선생을 어느새 나도 닮아간다.

"제발 내게 박수치지 말라."

지금 나는 자기부정을 하여야할 때인가보다. 정화의 단계이다.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할 때만......내가 모든것을 내려놓고 처절한 겸손으로 고개 숙일때만

내 영혼 속에서 빛이 솟아남을 나는 안다.

 

그것은 말이 쉽지...."처절한 겸손"이라는 것........

그것은 유교에서 말하는 겸양지덕이 아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지푸라기도 잡을 수 없는 인간이 가장 밑바닥을 인정하는 무능함의 선포이다.

 

적극적이고, 능력있고, 탁월하고, 특별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내게 그것은 최악이다.

그 최악을 나는 지금 반복 경험하며....반복경험함에도......여전히 최악을 또 다시 겪어야하는

나의 무능함을 떠올리며.......나는 한걸음씩 그 분 앞에 가고 있다.

절뚝거리며.....기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