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새겨진 사랑의 흔적
지난 주는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었고, 7월 마지막 주부터는 휴가철의 절정을 이룬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서 해변으로, 계곡으로, 산으로 자연을 찾아 떠난다.
엄청나게 밀리는 고속도로와 창 밖의 푹푹 찌는 더위 속을 뚫고 우리는 자연으로 떠난다.
왜 우리는 지치고 힘들 때 자연의 품으로 가려고 하는가 ?
나는 왜 ? 삶의 스트레스의 압력이 커질 때에 바다가 보고 싶거나, 숲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
창 3:19 ........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대지의 메타포는 어머니이다.
우리가 태어난 곳이 어머니의 자궁이요, 인류가 태어난 곳이 대지이니,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심리적 안식 뿐만 아니라, 육체의 편안함을 얻는다.
그리고 인간은 마지막에 대지 어머니에게 안김으로써 파라만장한 인생사를 정리하고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는 대지가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우리가 쉴 곳은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품이라고.
OK !
어머니라든가 아버지라든가....이 표현은 말할 수 없는 차원에 대한 근접한 메타포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막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라고 불렀다고 해서 설마,
하나님께서 남자 성기가 달리고 코와 턱 밑에 수염이 있는 우리 아버지 같이 생겼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대지를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은유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를 돕는데 매우 도움이 되기에 고대로부터 사용되어왔다.
나는 이 은유가 사랑의 詩로 들려진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머니 대지(자연 전체)에 충만한 분이시다.
하나님 그분의 사랑이 어머니 대지에 충만하여 대지와 하나가 된다.
*렘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어머니 대지는 피조물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랑의 관계를 말하려다보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메타포를 사용하지만,
이 은유에서 성 차별적인 상상을 하지 마시기를...)
*요1:3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지만,
이 땅에 사는 인간의 눈에는 하늘과 땅은 붙어있고, 서로를 부양하는 듯이 보인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은 연인처럼 대지를 끌어안고, 마치 대등한 사이인 듯 사랑을 속삭인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은 대지에 자신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사랑의 흔적으로 새겨놓았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에 경건하지 않던 자들도 경외감을 갖게 되고 최소한 평안을 느끼는 것이리라.
인간은 자연에서 나와서 여전히 자연의 일부로 살고 죽으며,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목격하며 살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자연의 일부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새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됨을 깨닫는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한밤중에 해변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며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 속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소리가 잠잠해지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요와 평안이 우리를 서서히 잠식한다.
그때 그대는 놓치지 말기를.
바다소리에 새겨놓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말 걸어 올 때이므로. ***
***발췌 : 한국관상지원단 7월4주 묵상글 -전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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