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을 강조하는 초심으로 반대여론 품으며 “기도” 당부
“저도 10리길을 걸어 주일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고 중학교 때까지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지난 23일 서거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2002년 10월14일 서울교회에서 교회갱신연구원에서 마련한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서 기독교에 대해 이 같은 회상을 했었다.
당시 이종윤 목사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고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전략적으로 종교를 선택하는 일은 없겠지만 대통령을 마치고 나면 종교를 선택해 신앙생활을 해나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2003년 16대 대통령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기독교계와 그리 좋은 인연을 유지하진 못했다. 당선 후 첫 국가조찬기도회에 불참하면서 교계의 서운함을 들어야 했고,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가 시국기도회를 시청 앞 광장에서 여는 등 임기 내내 ‘반노’정서에 시달려야 했다.
취임 첫 해인 2003년에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가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수차례 진행됐으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섰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반박하고 2006년에는 사학 개혁에 대해 재개정 운동을 벌이는 등 5년 간 끝없는 싸움을 이어왔다.
2004년 5월19일 열린 36차 국가조찬기도회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이유도 기독교계에 대한 불편한 심기로 해석됐었다. 당시 교계가 주도한 색깔공세는 노 대통령 지지의 상징인 촛불집회와 부딪히면서 남남 갈등의 요인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기독교계와 마주한 노무현 대통령은 “아직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간절하다”며 “이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과거 일제에 대항했던 기독교 선조들과 독재에 저항한 기독교인들의 고난과 희생을 거룩하기까지 했다”며 “민주주의 시대에는 오직 대화와 타협, 화해와 포용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으로 제직하면서 갈등을 넘어 국민 화합을 이뤄내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다시 1년 뒤 2006년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큰 은혜와 용기를 얻었다”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을 느끼며 여러분이 나를 위해 기도할 때 나도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등 교계와 화해의 마음을 드러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김명혁 목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에서 “2004년 청와대를 방문해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좀 관대한 입장을 취해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 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겸손하게 성찰하며 교계 지도자들에게 기도를 당부하는 등 “듣는 귀를 가진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링컨 대통령을 존경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으로 강력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으로 강력하게 각인되는 지도자가 참된 지도자”라며 임기 중에도 그리고 퇴임 후에도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들의 뜻을 모아가려는 시도를 수차례 하며 민주 국가 건설에 열정을 바쳐왔다.
정치적 이해를 넘어 나라의 지도자가 떠나갔다는 비통함은 기독교계에도 가득하다. 25일 오전 조문단을 꾸려 봉하마을로 내려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권오성 총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80년대 어려운 시절 인권 변호사로서 앞장섰고, 이후 민주화와 정치 개혁을 위한 행보에서 자기 헌신을 통해, 결국에 참여 정부를 세워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이루어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향후 상황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바란다”며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지며 28일경 교회협과 진보 교계를 중심으로 추모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