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는 축복이다 | |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고령사회는 재앙이 아니다. 오히려 축복이다. 단, 준비하는 사회에 축복이 있다. 잘하면 유토피아, 못하면 디스토피아다. 박정희식으로 말하자면, 하면 된다. 노인을 일하게 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순혈주의를 타파하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편견을 버리면 대안이 보인다. 딱 세 가지 편견만 버리자. ‘정년 연장의 꿈’은 대세다 첫 번째 편견. ‘노인이 오래 일하면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절대 아니다. 인류 역사가 증명한다. 유럽의 교훈을 배우자. 1980년대 유럽은 청년실업 극복을 위해 장년층의 조기 퇴직을 방관했다. 노인이 떠나면 청년이 채울 줄 알았다. 결과는 반대였다. 노인의 노하우는 청년의 혈기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일자리만 줄어 경기침체를 낳았다. 결국 노년의 일자리가 줄어드니 청년의 일자리도 줄었다. 유럽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요즘 유럽에서는 ‘입사시 나이를 묻지 마’ 캠페인, ‘정년퇴직을 퇴장시키자’ 운동이 한창이다. 유럽연합은 2000년 고령자와 여성의 고용을 확대하는 리스본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도 따라 배워야 한다. 아니 배울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2050년에는 생산가능인구(15~64살) 1.4명이 노인(65살 이상)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젊은이, 허리가 휜다. 불행히도 386세대는 영원한 청춘이다. 사회가 늙어가면서 중간 나이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에게 은퇴란 없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충고했다. “현재 수준의 노동 공급을 2005년에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퇴 나이를 12살 늘려야 한다”고(그래프1 참고). 물론 현재의 출산율을 전제하고. 현재 은퇴 나이가 55살이므로 67살까지 일해야 한다는 말씀. 이미 서구에서 은퇴란 없다. 미국에서 ‘강제 은퇴’는 불법이다. 유럽도 은퇴 나이를 연장하고 있다. 일본도 정년을 57살에서 60살로 연장하려 한다. 한국도 구색은 갖춰놓았다.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정년을 정할 경우 60살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아시다시피, ‘노력해야 한다’는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는 면죄부다. 대한은퇴자협회가 정년 금지를 입법하기 위해 방방 뛰고 있지만, 아직은 힘이 부친다. 그래도 ‘정년 연장의 꿈’은 실현될 수밖에 없다. 대세니까.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자. 그러면 세금은 더 내고, 연금은 덜 받아가는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횡재다. 고로 노인의 일은 청년의 짐을 덜어준다. 결론은 ‘노인을 공경하지 말자. 열심히 부려먹자.’ 두 번째 편견. ‘여성이 일을 하니까 아이를 낳지 않는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이건 마초들이 퍼뜨린 음해로 추정된다.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낳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 아이를 낳기 위해 집에 갇히면 경제활동인구가 더욱 줄어들어 고령자 부양 부담은 훨씬 늘어난다. 더구나 장지연 한국노동사회연구원(사회학)은 “출산율 높이기 정책은 출산율 낮추기 정책보다 더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집을 나와 일하는 즐거움을 알아버린 ‘노라’가 집으로 돌아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출산율 1.17을 인구 유지 수준인 2.1로 올리는 일은 당분간 ‘미션 임파서블’이다. 해법은 ‘저명하신’ 맥킨지 보고서가 지난해 제시했다. “위기의 대안은 여성 인력 활용뿐”이라고.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60%로 처참한 수준. 스웨덴(82%) 등 선진국보다 10% 이상 낮을 뿐 아니라 타이(79%), 인도네시아(61%)보다 낮다. 어떻게 하면 여성을 더 ‘부려’먹을까? 일하면서 애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최근 감추어진 비밀이 발견됐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이 일하느라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통념이 깨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가 증명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스웨덴 등 북유럽 나라들의 출산율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은 한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높다. 이런 ‘위기의 고령국가’에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마초의 향기’가 진한 국가라는 것. 여성이 불행하면 사회가 불행해진다. 비밀의 열쇠는 보육의 사회화였다. ‘일이냐 아이냐.’ 여성들이 햄릿이 돼야 하는 사회는 절대 출산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일하면서 애도 키울 수 있는’ 사회라야 출산율이 올라간다. 여성에게 출산장려금 듬뿍 주고, 육아휴가 팍팍 줘야 한다. 그러면 경제활동도 활발해지고, 출산율도 올라간다. 역시 일석이조다. 게다가 보육의 사회화가 여성의 경제참여를 늘리면,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로 다시 보육 등 여성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선순환’이 형성된다. 역시 일석삼조다. 고로 두 번째 결론은 ‘여성을 일터로 내쫓자. 대신 애는 잘 봐주자.’ 마지막 편견은 ‘이민자는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혹시 이주노동자를 더 받으려는 외국의 음모가 아닐까 의심된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기는커녕 한국인이 버린 일자리를 채워준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3D 산업은 한번 기피하면 다시 안 들어가는 ‘관성’이 생긴다”고 말한다. 더구나 건축업이나 서비스업은 ‘수출’할 수도 없다. 인재가 재산인 나라 대한민국은 곧 인재가 부족한 나라가 된다. 통계청의 예측을 보면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2005년 3467만명에서 2050년 2275만명으로 줄어든다. 일자리는 있어도 일꾼이 없다. 이민이 대안이다. IMF가 지난해 경고했다. “현재의 출산율을 전제할 경우, 2050년에도 현재의 노동력 공급 수준을 유지하려면 인구의 35%를 이민자로 채워야 한다”고(그래프2 참고). 인구의 3분의 1이 이민자인 사회, 한국의 미래상이다. 사실 미래상도 아니다. 벌써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다. 2003년 결혼 건수 중 국제결혼의 비율은 8.4%에 이른다. 지금 베트남, 필리핀 출신 엄마, 아빠를 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40만명의 이주노동자도 정착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솔직해지면 된다. 한국은 다민족 국가다. 그리고 다민족 국가, 미국의 청춘 유지 비결을 배우자. 한국을 다민족 국가로! 유엔 통계를 보면 미국은 2050년에도 중간 나이 41.1살의 젊은 나라다. 반면 한국은 같은 해 53.9살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미국의 비결은 간단하다. 이민이 미국을 젊게 한다. 우리도 발상을 바꾸면 된다. 한국 못지않은 순혈주의 사회인 일본도 최근 필리핀 출신 이민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노인들은 아픈데 간호할 사람이 없고, 어쩌겠는가? 독일도 60년대 외국 인력 교체순환 정책을 썼다. 3년만 일하고 나가라는 한국의 고용허가제처럼. 하지만 고용주들이 반발했다. 숙련공을 내보내고 미숙련공을 받아야 했으니까. 결국 이주자들이 정착할 길이 열렸다. 그렇다고 독일이 혼란에 빠졌다거나 독일인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후문은 없다. 오히려 일꾼이 문화까지 들여오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이주노동자는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다. 참, 지구촌이 한꺼번에 늙어가고 있으니 고급 인력은 모셔와야 할 판이다. 벌써 이미지 구겼는데, 앞으로는 한국의 매력을 가꾸는 일에 애써야 한다. 마지막 결론은 ‘외국인을 꾀어 데려오자. 국적도 인정해주자.’ 앗, 째깍째깍…. 고령사회 시한폭탄이 덮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습이 어렵다. 아직 늦지 않았다. 노인과 여성과 이민자의 등골을 빼먹자. 한국이 더 늙기 전에 그들의 끓는 피를 수혈받자. 그래야 잘 늙는다. 사회도, 대책 없이 늙으면 서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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