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기도 9단계
이런바 수덕단계에 속하는
① 구송기도 ② 묵상기도 ③ 정감기도 ④단순함의 기도를 정리해보자.
인간을 크게 몸과 정신으로 나눈다면
입으로 외우는 구송기도는 먼저 몸에 가까운 것이다.
정신 영역을 지(知)·정(情)·의(意)로 구분할 때
생각이 주를 이루는 묵상 기도는 아무래도 "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감기도 "정"에,
의지적 요소가 강한 단순함의 기도는 "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함의 기도는 분심이 들 때마다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의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도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성이다.
그리고 단순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반복성이다.
분심이 단순함의 상태를 방해할 때 다시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그 단순함으로 되돌아오는 노력,
즉 처음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반복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함의 기도를 넘어 더 이상 내 의지가 아닌 하느님이 이끄시는
단계인 신비적 단계는 ⑤ 주부적 관상에서 ⑥고요기도 ⑦ 일치기도
⑧ 순응일치 기도 ⑨변형일치 기도로 나아간다.
"주부적 관상"은 내가 아닌 하느님께 이끌리는 첫 단계로,
지성이 희미해지는 단계다.
지성을 시비를 가리는 판단력과 직관으로 나눈다면
주부적 관상은 판단력은 사라지고 직관 정도만 남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인 "고요기도"는
하느님께 온전히 사로잡힌 채 몸만 남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순응일치 기도는 어떤 단계인가.
이른바 탈혼 상태다.
몸까지 완전히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단계다.
성인들은 이 단계에 머무는 것을 경계했다.
마지막인 "변형일치 기도"는 몸과 함께 지 ·정·의 모두가 다시 되살아난 상태다.
그러나 예전의 몸과 마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몸과 마음과 하나가 되어 돌아 온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안하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쓸데 없는 일에까지 정신을 쏟는 등 지혜롭게 살지를 못한다.
기도를 잘 하면 몸과 마음이 맑고 순수해질 뿐만 아니라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를 겸비하지 않은 맹목적 사랑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지혜가 꼭 필요하다.
더불어 기도를 잘하게 되면 어떤 고통이 와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은총으로 여길 수 있게 된다.
여타 종교나 수많은 신영성 단체가 몸과 마음을 맑고 순수하게 하는
효과적 수련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교의 고통과 사랑에까지 동참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가 중요하다.
"거룩한 독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게 해준다.
[박순원 신부, 평화신문]
이런바 수덕단계에 속하는
① 구송기도 ② 묵상기도 ③ 정감기도 ④단순함의 기도를 정리해보자.
인간을 크게 몸과 정신으로 나눈다면
입으로 외우는 구송기도는 먼저 몸에 가까운 것이다.
정신 영역을 지(知)·정(情)·의(意)로 구분할 때
생각이 주를 이루는 묵상 기도는 아무래도 "지"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감기도 "정"에,
의지적 요소가 강한 단순함의 기도는 "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함의 기도는 분심이 들 때마다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의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도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성이다.
그리고 단순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반복성이다.
분심이 단순함의 상태를 방해할 때 다시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그 단순함으로 되돌아오는 노력,
즉 처음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반복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함의 기도를 넘어 더 이상 내 의지가 아닌 하느님이 이끄시는
단계인 신비적 단계는 ⑤ 주부적 관상에서 ⑥고요기도 ⑦ 일치기도
⑧ 순응일치 기도 ⑨변형일치 기도로 나아간다.
"주부적 관상"은 내가 아닌 하느님께 이끌리는 첫 단계로,
지성이 희미해지는 단계다.
지성을 시비를 가리는 판단력과 직관으로 나눈다면
주부적 관상은 판단력은 사라지고 직관 정도만 남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인 "고요기도"는
하느님께 온전히 사로잡힌 채 몸만 남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순응일치 기도는 어떤 단계인가.
이른바 탈혼 상태다.
몸까지 완전히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단계다.
성인들은 이 단계에 머무는 것을 경계했다.
마지막인 "변형일치 기도"는 몸과 함께 지 ·정·의 모두가 다시 되살아난 상태다.
그러나 예전의 몸과 마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몸과 마음과 하나가 되어 돌아 온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안하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쓸데 없는 일에까지 정신을 쏟는 등 지혜롭게 살지를 못한다.
기도를 잘 하면 몸과 마음이 맑고 순수해질 뿐만 아니라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를 겸비하지 않은 맹목적 사랑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지혜가 꼭 필요하다.
더불어 기도를 잘하게 되면 어떤 고통이 와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은총으로 여길 수 있게 된다.
여타 종교나 수많은 신영성 단체가 몸과 마음을 맑고 순수하게 하는
효과적 수련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교의 고통과 사랑에까지 동참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가 중요하다.
"거룩한 독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게 해준다.
[박순원 신부,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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